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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공사장 로맨스

[공사장 로맨스] 6화 - 용기를 주는 겁쟁이 상담사

 매운 닭볶음탕 냄새가 가득한 적당한 가게는 제법 시끄러웠다. 자리에 앉아서 옆 사람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조그만 가게에서 계란찜과 주먹밥 그리고 닭볶음탕에 치즈추가를 주문했다. 가게는 북적이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섞여있었지만 세아씨의 작은 말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얼굴은 작은데 얼굴에 비해 큰 입, 세아씨가 말할때 실려오는 감정 또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봐온 세아씨는 조근조근하고 침착하지만 오늘은 생각보다 말이 빨랐다. 어쩌면 세아씨는 자기 주변사람들보다 나같은 외지인을 만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미묘한 날이 아닐까 생각했다.

 

"계란찜이랑 맥주 나왔는데 세아씨 고민 이제 얘기해줄래요?"

"그럼요~ 짠 해요. 우리"

부딪힌 컵조차도 우리 만남에 두근거렸던 것인지 컵 안의 맥주는 오늘따라 더 찰랑거렸다.

"세울씨, 제가 아는 4살 어린 동생이 있어요. 남한테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인데 참 세심해요. 그래서 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동생덕분에 세상 따뜻함을 많이 느껴요. 근데 제가요. 그 동생한테서 조금 설레임을 느낀 것 같아요."

"음 그게 문제가 되나요? 설레였다면 두근거리고 좋아하는 마음 간직한 채로 계속 좋아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으으음 말하기 조금 어려운데 안돼요. 좋아해서도 만나서도 안돼요. 그리고 제 스스로도 걔가 남자로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이 설레임이라는 게 사실 걔는 모든 사람들한테 다 할만한 행동이거든요."

"그 사람 마음을 잘 모르기도 하면서 세아씨 마음도 모르니까 더더욱 다가갈 마음이 안생기겠네요."

"네 맞아요. 맞아요! 그리고 진짜 저는 동생으로 지내고싶은데 이런 마음이 잠깐이라도 들었다는 게 제가 너무 싫어요."

"혹시 둘이 만나면 안되는 어떤 이유가 있어요?"

"아뇨 딱히 그런거는 아닌데요. 그러니까 음 저희 둘 다 연애하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해야겠죠...? 그게 그 친구는 취업준비하느라 바쁘고 저는 지금 일이 너무 좋아요. 지금은 이 일에만 집중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집중하고 싶지 않아요. 그 동생도 확실히 그걸 알고 있구요. 저희 둘 다 그런걸 잘 알기에 서로가 의지를 많이 했어요. 많이 했는데, 많이 했는데 제가 그걸 그르친 것 같아요."

"괜찮아요. 사람 마음을 어떻게 딱 잘라서 조절하겠어요. 근데 궁금하다. 어떤 부분에서 설렌 거에요?"

"아 그게요. 진짜 뜬금없기는 한데 제가 감기에만 걸리면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머리만 딱 아파요. 그렇게 아프던 날 밤에 제가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그렇게 몇 일을 잠을 늦게 들었더니 자꾸 새벽에 자는 버릇이 된 거 있죠. 매일 아침이 피곤했어요. 우연히 만난 동생한테 이런 얘기도 했더니 동생이 생각보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거에요."

"아 그런 진지함?"

"아니에요. 얘기 좀 더 들어봐요. 내일 동생이 이어슬립을 사온거에요. 잘때 쓰는 수면귀마개있거든요. 이걸로 잠에 들면 좀 더 나을 거라고 누나가 잠을 제대로 못 자니까 자기도 걱정돼서 잠을 못잤대요."

"와 달달하다. 진짜로 달달하다. 진심이 느껴졌겠네요?"

"표정에서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제가 그때는 감동이었고 잘 때마다 걔 생각이 났어요. 매일 아침과 밤에 걔 생각을 하게 됐고 어쩌다 잃어버렸을 때도 걔가 생각나서 엄청 속상하고 마음 아팠어요. 누가본다면 그 단순한 이어슬립 잃어버린 걸로 마음 아파하는 제 모습을 이상하게 봤을 정도로요."

 

이정도면 진짜로 좋아하는 건데? 자기 마음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만날 수가 없는 걸까. 연애라는 건 마음 이끌리면 이끌리는 거 그대로 만나보고 사랑해도 된다 생각했는데, 아닌 건 아닌 사람이 있구나. 이게 좀 더 어른스러운 걸까 아니면 내가 연애라는 걸 가볍게 생각했던 걸까 고민을 많이 한다. 

 

"연애라는 거요. 그거 세아씨한테는 뭔가 무겁고 신중한 건가요? 저는 늘 내 마음이 이끌리는 뭐 그렇게 행동했어요. 사랑이 아니더라도 확인하고싶어서 만나보는 거에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직접 알아본다. 지금 보이는 게 무거워 보인다면 진짜 무겁다고는 말 못하죠. 막상 들어보면 가벼울 수도 있어요. 뭐든지 그래요. 어려울 것 같고 순탄치 않아보인다면, 있잖아요. 못 버틴건지 혹은 이겨내는지는 해보고나서 느끼는 결과에요. 이겨내면 더 성숙해졌을 것인데 못 버텨도 하나 배운거죠. 우리는 아직 그래도 되는 나이니까요. 한참 부딪히면서 배워야하는 시기요.

"그러고 싶은데 저도 막 그러고 싶거든요. 그게 어려워요. 저한테는 확실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워요. 많이 주저하고 머뭇거리다가 놓친 일들이 많아요. 겁이 나는게 커요. 저 사람이 결국 나 안 좋아하면 어쩌지? 내가 괜히 나서서 했다가 실수하면 어쩌지? 이러죠. 헤 저도 막 살고싶어요. 하고싶은 거 하고 갑자기 연차쓰고 여행도 가고 싶고  저 좋다는 사람 나오면 그냥 아무 생각말고 그 사람과 연애하고 싶어요."

"그게... 막 살고 싶으시다는 거요. 후회없는 삶이랑은 조금 다른 어감이 있네요. 세아씨가 바라는 건 후회없는 삶이죠?"

 

동그랗게 뜬 세아씨의 눈을 보고 몇 초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세아씨는 이런 사람이구나 뭔가를 깨닫게 되면 신이 나는 스타일, 소녀 같은 그런 감성은 내 마음도 같이 동화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