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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공사장 로맨스

[공사장 로맨스] 2화 - 많은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면접 대기실에서 세아씨를 만났다. 원래는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로 여러 대기자들 앞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해주는 역할인데 선배가 도와주기로 해서 자기는 여유가 생겼다는 말을 했다. 바로 이어서, 100명쯤 되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답장을 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진짜 답장을 한 게 맞냐고 물어봤다.

 

"사실 거짓말했어요. 메세지 못 보내겠더라고요. 저는 똑똑하지도 않고 특출 난 사람도 아니에요."

"그래요? 저도 아닌데 음 여기는 특출 난 사람을 뽑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일 평범한 사람을 뽑는 것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과 동기 교육을 받다가 어쩌다 눈에 띄는 사람은 몇 있어도 모두가 잘 났는데 몇 명이 평범한,

뭐 그런 사람은 없네요."

"아직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공감은 못 하겠지만 믿을게요!"

"근데 결국 면접보러 오셨네요? 면접 보러 온 사람들 중에 불안한 사람 말고 자존감 없는 사람은 오랜만이네요."

"크크 찌질해보이죠? 뭐 제가 나중에 후회하기 싫어서 여기 왔어요. 직접 해보고 결과가 어떻든 미련 안 남게 하려고요"

"응원할게요. 합격보다는 정말 미련 없는 면접이 되기를 응원할게요."

 

 세아씨는 몇 마디 후에 떠났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면접 보는 사람 중에는 다들 자존감이 가득한가?

자신감과 자존감은 다른데, 나는 여기에서 자존감을 가질 자격이 되는 사람인가? 스스로도 답을 할 수가 없다. 또 평범한 사람들을 뽑는 대기업이라는 말은 나를 위로해주려고 했던 거겠지? 결국 학교에서도 성적 좋은 순서로 그에 맞는 회사를 갔으니까. 세아씨가 여기에서도 자존감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곧 문이 열리고 내 이름과 3 명을 더 불렀다.

 

"여기 문 앞에서 잠깐 기다리시고, 제가 들어오라고 말씀드릴게요. 편히 계세요"

 

 이 후에는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 안절부절 손을 계속 주무르는 사람, 천천히 눈을 감고 심호흡하는 사람 그리고 그걸 관찰하는 나.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또 모두가 자신만의 사연과 절실함이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하나 확신할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제일 불안하지 않았고 세아씨 말대로 미련 없는 면접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제 저 문만 열리기를 기다리다 들어오라는 신호를 받았다.

 들어가자마자 생각보다 부드러운 면접관들의 표정에 조금 놀라기도 했고 최대한 우리 눈을 마주하려 하는 모습에 감정이 편안해졌다. 물론 우리 넷 중에 둘은 많이 긴장한 모습이 여전했다. 어렵고 쉬운 기술적 질문들이 쏟아졌으나 모두가 잘 대답했다. 그리고  기억에 진하게 남을 것 같은 마지막 질문이 들어왔다.

 

"입사하고 만나는 사람들의 성격은 다 다른데 어떻게 회사는 잘 돌아갈까요?"

 

 당황했다. '오 그러네?'라는 생각이 맨 처음으로 떠올랐다. 그러다 1번 사람은 조직심리학을 얘기하며 우리가 면접보기 전에 봤던 인적성검사에서 몇 집단을 거르며 비슷한 성격들을 모아놓는 방식을 얘기했다. 면접관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나 또한 수긍했다. 바로 4번 사람은 소속된 회사의 명예와 직업 때문에 최대한 마찰을 피하는 쪽으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세마디 파악법'이 떠올랐고 지금까지는 기술면접이라 '정답'이 존재했는데, 지금은 회사가 잘 돌아가는 '정답'이 아닌 '우리의 방법'을 물어본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답'만 말해야 된다는 틀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4번 사람의 말이 끝나고 나는 입을 떼었다.

 

"현재 어떤 시스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라면 우리 부서원들을 하나의 집을 만드는 건축물로 비유하며 접근할 것입니다. 과감한 사람은 빔, 섬세한 사람은 나사, 관찰력이 좋은 사람은 크레인처럼 비유할 것입니다. 빔은 나사가 없으면 다른 빔을 만나 조립되지 못하여 바람에 흔들릴 뿐이고 빔이 없으면 집은 무너질 뿐입니다. 제대로 된 위치에 빔을 놓는 크레인, 집의 뼈대인 빔, 뼈대를 서로 이어붙여 단단히 만들어주는 나사를 부서원들에게 얘기할 것입니다. 결론은 우리가 큰 공동목표를 바라보며 자잘한 성격차이 정도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도록 차이와 이해, 양보와 배려를 강조하겠습니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기분은 좋았다. 나는 아버지가 말씀하신 '세마디 파악법'도 이해했고 내가 그동안 봐온 현장에서 배운 게 다른 조직에서도 비슷함이 있음을 느꼈고 내가 아버지를 도와드렸던 건 더 이상 '노가다'라고 말하기에는 이제부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생겼다. 나는 어디에 가더라도 잘할 자신이 있다. 면접이 다 끝나고 아버지와 저녁을 먹었다. 있었던 일들을 아버지와 복기하며 아버지는 얘기를 잘 들어주셨고 꼼꼼하게 집어주셨다. 저녁을 계산하고 나오면서 아버지께서는 물어보셨다.

 

"떨어져도 후회 안 하겠냐?"

"네 전혀요. 아버지가 이거 계산하신 건 후회 되겠네요."

"난 지금도 후회 중이여."

 

 차에 타려던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메시지에는 세아씨가 내가 어딘지 물어보는 메시지였다. 나는 회사 근처 공원을 걷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 후 세아씨가 괜찮으면 자기 좀 잠깐 보자는 말에 이상한 촉감이 몸에 감돌았다.

 

"아버지, 아버지 먼저 내려가야겠는데요. 친구가 생길 것 같아요."

"진짜 아들은 다 키워도 필요가 없다. 꼭 너도 느끼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응?"

"원래 이 나이엔 남자나 여자나 다 사춘기예요. 이해하는 멋진 아버지가 됩시다. 저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