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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공사장 로맨스

[공사장 로맨스] 4화 - 보석으로 만든 검

 세아씨에게 처음으로 보낼 메시지를 고민했다. 어떻게 보내야 부담 없고 자연스러운 첫마디가 될까? 핸드폰을 괜히 괴롭혀본다. 껐다가, 켜고 툭툭 두들겨도 보고, 다른 어플을 켰다가 껐다.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 쉽게 말했던 걸 세아씨에겐 너무 어렵다.

 

"바빠요?"

 

 무슨 이런 생뚱맞은 말을 했을까. 보내자마자 하는 후회,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않아 더 불안해졌다. 살면서 이렇게 소심해진 적이 있었을까. 동글동글 손가락으로 나의 불안을 다 표현하다 오늘 하루에 대해 조언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 목록에서 제일 좋은 상담사를 골라 전화를 걸었다.

 

"유미야 나 물어볼 거 있어."

"뭔데? 여자 얘기지? 딱 왔어."

"여자 얘기는 맞는데, 그 전에 딴 거 하나만 물어보자. 만약에 어떤 남자가 너 보고

저번에 우리 만난 적이 있는데 진짜 혹시나 했거든요? 어떻게 여기서 또 마주치죠?라고 했어

그러자마자 우리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요?라고 다시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

"음 클럽? 학교 동아리? 번호 물어봤던 사람인가?"

"와 너 혼나야겠어 그렇게 대답하면 안 돼 다음엔 도서관이라고 얘기해."

"이게 뭐라고 내가 오빠한테 혼나? 너부터 아무 여자나 보자마자 좋아하고 그러지 좀 마, 너 내 눈에 띄면 죽어"

"살벌하네, 최유미"

"최유미? 최윰댕은 또 어떤 가시나래? 나 김유미야 이 자식아 아무튼 그 여자 얘기해봐봐."

"어, 그게 사실은 그 여자가 저 질문을 하더라고 근데 알고 보니 처음 본 사람이더라. 저 질문을 해서 나오는 대답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충 알 수가 있대. 신기하더라 진짜로 그게 맞는 말이면서 만나는 동안에 완전 확 잡혀버렸어."

"뭐야 오빠, 이번엔 철학과 뭐 그런 애 만난 거야?"

"아니 쏘나전자 다니는 데 인사과 같아. 뭐랄까 얼굴이 이쁘기보다는 분위기가 너무 이뻐. 말도 엄청 부드럽고 나긋나긋해."

"욜~ 그런 사람이 오빠를 왜 좋아한대?"

"좋아하는지는 몰라 그냥 오늘 처음 만났어."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욕은 다 내 귀를 흘러지나간 것 같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보니까 세아씨에게 연락이 왔었다. 바쁘진 않지만 갤러리를 보는 중이라고 했다. 바보 같다 생각한 '바빠요?'가 별 거 아니었다. 갤러리에서 어떤 게 기억나냐고 하니까 중앙박물관 특별전이라고 했다. 박물관이라니, 세아씨의 취미는 박물관인가? 세아씨는 특별전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거기서 금, 에메랄드,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검을 봤어요. 명예를 위한 검인데, 전쟁에 나갈 때도 진짜 싸우는 검과 보석으로 된 검을 들고나간대요.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았어요. 처음에는 영롱한 다이아몬드와 금빛의 날, 그리고 박물관의 무거운 향기 덕에 진한 에메랄드의 깊이가 느껴졌어요."

"보석과 검이라니 나름 상반되는 단어들이 모였네요? 보석은 주로 집에, 검은 전쟁터에 그쵸?"

"오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여러 가지 잡념들 때문인지 그때 좀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요."

"말 같네요. 어쩔 때는 보석이 가득 담겨진 진한 말과 또 절대 아물지 않는 계속 벌어지는 상처를 만드는 가장 무서운 검이기도 하죠. 우리 모두 가슴속에 보석검을 가지고 있네요."

"세울씨는 시야가 정말 넓은 것 같아요. 또 사소한 것에서도 많은 걸 배우는 세심한 사람이네요. 박물관에 전시된 그 검을 우리 가슴속에 하나씩 있다는 깨달음을 주네요."

"아니에요. 세아씨가 저를 더 빛내주는 거죠. 별 큰 뜻이 없는 말들을 하나하나 잘 주워 담아서 저를 빛나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에요. 저도 세아씨를 빛나게 하고 싶어요."

"좋네요. 세울씨랑 얘기하면 힐링되는 기분이에요."

 

 기분이 좋아졌다. 말 그대로 좋은 느낌.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다. 나랑 세아씨는 어울리나? 유미는 세아씨같은 사람은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했다. 그런 남자들 속에서 나를 고를 수 있을까? 작전을 짜야겠다. 세아씨가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작전, 지금은 어울리지 않아도 세아씨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자주 얼굴을 비춰야겠다.

 건물을 올리기 전에 땅을 본다. 평평하게 만들고 얼마나 많은 무게를 버텨야 하는지, 그리고 빔의 두께를 정하고 최초 설계를 검토하고 확정한다. 그 뒤로 건물은 쭉 올라간다. 지금부터 세아씨가 좋아졌으니까 세아씨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 알아보고 언제 다가가야 할지 타이밍을 봐야겠다. 세아씨의 관심사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연애에는 이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사람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이론이 있고 과학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