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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Novel)/공사장 로맨스

[공사장 로맨스] 1화 - 많은 사회 속 내 자리는 있다

전자과에 들어와 졸업할 때 되니까 아버지께서 얘기하셨다.

"어차피 취업이 안되는데 현장에서 일하는게 어떠냐?"

 

 아버지는 30년 넘게 건축현장에 골조를 세우는 일을 하신다. H 모양의 몇 톤이 되는 빔을 세우고 조립하면

건물의 뼈대가 된다. 수능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3학년을 제외하곤, 시간이 날 때 마다 현장에 나가 사람들과

합을 맞춰 일을 하곤 했다. 40m 위를 무거운 나사와 더 무거운 공구를 챙겨 일을 하는게 대부분이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안전장치 하나 없이 일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철은 여름에 뜨거웠고 겨울엔 차가웠다.

 

"아버지, 제 전공이 건축도 아니고 현장에서 일하는 건 너무 힘들어요"

"크크 그 단단하고 무거운 철에도 구멍이 뚫리고 다른 철들과 조립되잖냐"

 

 늘 하시는 말씀이다. 여러 뜻이 있는데, 이번에는 전공이 다른 나 조차도 일을 하다보면 현장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할 수 있다는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나 보다. 말버릇이지만 궁금하지 않아서 뜻을 물어본 적은 없고 맥락만

파악해서 늘 넘어갔다. 그러던 와중에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쏘나전자 채용팀 김세아 사원입니다. 명일 면접 일정이 있는데 회신이 없으셔서 연락드렸어요."

"네?! 아 안녕하세요. 음 먼저 제가 문자를 보내기는 했는데 제대로 전송이 안 됐나봐요. 면접 꼭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먼저 유선상으로 확인만 할게요. 한세울씨 본인인지, 지원하신 분야는 어떤 건지 말씀해주실래요?"

"예 본인 맞구요. 지원한 분야는 부품개발입니다."

"네 문자로 다시 일정, 장소 보내드릴께요. 참고로 꼭 정장은 아니여도 되니까 부담가지지 마세요."

 

 전화를 끝내고 생각했다. 대기업이고, 경쟁률은 말할 것도 없고, 당연히 떨어지겠지. 사실 그래서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 갈 생각도 없었는데 어쩌지. 그러다 아버지께서 물어보셨다.

 

"어디야?"

"응 쏘나전자. 어차피 떨어질건데 뭐하러 경기도까지 올라가야하나 싶어"

"왜 떨어진다 그러는 겨? 다른 애들은 면접까지도 못 가고 떨어져서 화내는데"

"대학도 학점도 다 자신없죠 거기는 나 같은 애들 없어"

"사람들 중에 뭐 하나 후회 안 하는 사람이 없어. 그거 나중에 후회된다. 그 나이에 여지를 만들지마 밑져야 본전이야"

 

 맞는 말씀이다.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공부를 제대로 해서 성적 좀 잘 챙길 걸이라고 지금도 후회한다.

현장 아저씨들, 내 친구들, 사람들은 자기만의 후회를 가슴에 가지고 산다. 면접 가자.

 

"근데 아버지, 나 교통비는 아버지가 주는거죠?"

 

[면접날 아침]

 

 결국 제일 깔끔한 옷은 정장밖에 없었고 눈을 뜨기 전에도 이미 걱정이 내 얼굴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게 문제가 아니였다. 아버지도 까만 정장을 입고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문제였다. 도대체 왜?

나는 기차도 잘 타고 스마트폰 있는데, 기차에서 마음 편히 가고 싶었는데 문제다. 문제... 또 아버지가 정장을

입으신 것도 낯설다. 매일 등산복 작업복 그게 우리 아버지고 저 모습은 내가 보기엔 좀 당황스럽다.

 

"아버지, 아버지도 왜 정장을 입었어요? 아버지도 서류 붙었어요? 크크"

"남자는 의외로 단순해서 옷만 바꿔입어도 사람이 달라져. 오늘은 올라가면서 진지한 얘기 좀 해보려고"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맨날 의미심장해요."

"어 근데 지금은 아니야. 대화하는 법을 얘기할거야. 뭐하는 사람인지 안 채로 그 사람과 세 마디씩만 주고 받으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게 뭔지 바로 알 수 있어. 그저 집중을 안 해서 눈치 못 채는 게 대부분이야."

"제가 집중을 했는데도 눈치를 못 채면, 저는 눈치 없는 사람일까요?"

"비슷하지. 근데 눈치보다는 공감을 못 하는 사람이 더 정확한 표현이야. 대화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이 돼 그 전까지는 대화라고 말하기엔 부족하지. 그래서 그 사람의 눈빛을 보고 감정을 느껴 그리고 이해해라.

진짜 바라는 것은 뭘까? 이 사람이 다음에도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내가 될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계속 생각해야해"

"뭔가 치밀한 사람이고 계산적인 사람 같아요"

"입이 아니라 마음으로 대화하는 방법이니까 계산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아 감정이 풍부해질거야 어쨌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겠다. 이제 자라"

"오? 세 마디는 넘었지만 제가 원하는 걸 말씀해주셨어요."

 

 얘기를 듣다보니 잠이 오지 않았다. 창가에 지나치는 저 나무들만큼 많은 사람을 만날텐데 세 마디로 파악이 될까?

나는 지금까지 만난 여자친구들에게 저 '세마디 파악법'을 쓴 적이 있긴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몇 마디를 얘기해도

파악이 쉽지 않던 적도 많았다. 마음은 차분해지지 않았고 회사는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가 가까워지니까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회사에 합격하는 상상과 임원이 되어 멋진 의자에 앉는 상상도 머리 안에서 자라난다. 내 이름이 인터넷에

나오는 날까지. 회사 내방센터에 들어오니 다 정장을 입은 사람이였다. 정장입지 말라면서 다들 정장만 입었다. 나중에 합격하면 세아씨한테 얘기해봐야지 어쨌든 나도 입기를 잘했다.

 

 회사에는 따로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아버지와 제대로된 인사는 못 나누고 나왔지만 여전히 '세마디 파악법'

은 머리카락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과연 내가 세마디 파악법을 제대로 써도 나는 합격할 수 있을까? 모두가 듣고 싶은

달콤한 얘기만 했다면 그 중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 말고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대기업이니까.

그 큰 곳에 내 자리는 있을까? 문득 아버지께서 하셨던 단단한 철조차 구멍이 뚫려 조립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래, 일단 면접에 집중하자 분명 저 대단한 회사에도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가 일할 자리는 반드시 있다.